[ 전호진박사의 선교 이야기] 자립선교를 호소합니다⓵
- 작성자 : HesedKosin
- 21-08-10 19:38
<자립선교를 호소합니다⓵>
“한국 선교사들 돈이 많아요.”
위 제목은 필자의 것이 아니라 태국의 한 카렌족 교회 지도자가 한 말이다. 카랜족 교회를 위하여 사역하는 오영철 선교사는 얼마전 카렌족 교회 지도자와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많은 선교사 들에게 배포하였다. 오선교사의 글 일부를 그대로 일부 옮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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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사들 돈이 많습니다.”
매홍손도에 있는 깽홈(씨쏘뿌)교회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리' 목회자도 머리를 끄덕인다.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궁금하여 그 상황을 질문한다. 이것은 한국 선교사들의 교회건축 지원과 관련된다. “여러 한국선교사들이 교회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돕는 선교사를 언급한다. 그런데 다음의 경우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적하였다. “A선교사는 교회건축을 비즈니스처럼 합니다.” “교회를 많이 세워주면 후원자들이 좋아하게 되는가 봅니다. 일을 잘하는 선교사처럼 보이겠죠. 그러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는것 같습니다. 일종의 비지니스처럼 하는 것이죠”
그들은 그들의 관점으로 선교사의 의도까지 분석하고 있었다. 선교사의 사역을 그들의 경험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선교사의 건축지원이 순수하지 않은 의도라고 믿고 있다. 그들 방법으로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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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 선교사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할 뿐 아니라 이 글에 자극을 받아 코로나 이후 한국 선교의 바른 방향을 위하여 이 주제를 시리즈로 연재할까 한다.
먼저 사진을 소개한다. 첫 캄보디아의 문 닫은 교회이다. 물론 한국선교사가 세워 준 것이다. 중국 서안에 한국의 돈 있는 장로님이 순수한 선교열정으로 무려 10억 이상의 거금을 들여 중국역사박물관을 세우고 동굴 구석에 제자양육을 위한 밀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반기독교의 공산당 정부가 용인할리 없다. 결국 파괴되고 말았다.
자립 선교를 말하면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이 말은 성경도, 선교지도, 과거 선교역사도 모르는 소리이다. 돈 선교 실패 역사는 너무나 많다. 지금부터 필자의 이론으로 보다는 19세기 독일 복음주의 선교학자 구스타프 바르넥(Gustav Warneck)의 선교론으로 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 구스타프 바르넥 소개
필자는 바르넥의 선교론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자립이론만은 너무나 탁월하여 소개한다. 그는 19세기 헨리 밴과 루프스 안더슨과 같이 자립이론 제창자이다. 필자는 1992년 『한국선교: 과거, 현재, 미래』에서 자립원리를 논하였다. 그러나 바르넥은 선교지는 전혀 가보지 않은 “칠판선교사”이지만 성경적 원리 전개는 너무나 탁월하다. 해외여행은 영국애서 열린 부흥회와 치유선교대회에 참석한 것 뿐이다. 저서 복음주의 선교교리(Evangelisches Missionslehre)는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서인데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바르넥은 복음 주의자들에게 선교는 신학 뿐 아니라 역사, 언어, 문화, 종교에 대한 철저한 훈련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19세기 서구 문명과 기독교에 대하여 낙관적인 독일 민족주의 철학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1880년대 독일이 식민지를 가지려고 하자 “식민지에 대한 선교사의 입장”이라는 논문에서 식민지와 선교는 함께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1896년 일본이 한국 합방을 시도하기 시작할 때 Japanisches Regiment Korea (일본의 한국 지배) 라는 짧은 글에서 Allgemeine Missions Zeitschrift, 1906년 일본의 합방은 한국 기독교에 유리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그는 1895년 Theodore Chriestlieb, Reinhold Grundsmann과 공동으로 선교잡지 Allgemeine Missions Zeitschrift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복음주의 선교학회도 만들었다. 그는 영어권의 복음주의 선교이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필자는 풀러 출신으로, 랄프 윈터 박사를 존경한다. 윈터박사는 처음으로 모달리티 소달리티 이론을 제안하였다. 전자는 교회선교회이고, 후자는 초교파 선교회로서, 윈터박사는 제도적 교회는 (institutional church) 선교가 없다고 하면서 월리암 케리를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부른다. 이 주장이 지금 많은 반론을 받고 있다.
캐리 이전에 영국 성공회, 존 후스의 모라비안교회, 루터교, 장로교가 많은 선교를 하였는데도 이들의 선교역사를 무시한다. 이 이론의 첫 주창자는 바르넥이다. 그의 이론은 개혁주의(장로교 포함) 선교론과는 다르지만 실제적인 원리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한다. 19세기 후반 독일신학은 하르낙, 트뢸취 (종교사학파)의 다원주의 신학이 휩쓸 때, 트뢸취의 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복음주의 변증학을 강조하였다. 그의 신학은 독일 경건주의의 교회관과 선교관을 바탕으로 한다. 진정한 교회는 교회내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로서 이들이 선교 역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으로 이 이론이 초교파 선교회의 골격이 된다.
■ 성경적 교회관 : 성경적 선교의 지름길이다.
바르넥의 자립이론은 그의 성경적 교회론의 결과이다. 그는 선교지에서도 성경적 교회관에 기초한 교회개척과 성장을 강조한다. 그의 교회관은 성경의 기초한것 이지만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따라가기는 실제로 어렵지만 이것이 정로이다. 한국선교의 문재점은 잘못된 교회관의 결과이다. 그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공동체로 정의하여 신약의 교회라는 용어는 는 Kirche(Church)로 보다 Gemeinde (community)로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철저히 설교가 교회 설립으로 발전하도록 하였다.(마16: 18) 선교의 목표는 교회설립이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세웠는데 첫 단계는 유대인 중심이었고 (행 2,41,47; 5,11; 9,31; 11,22). 다음 이방인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었다.(행11,26) 그러나 그는 단일교회로서 교회가 아니라 독일어 Gesamtgemeinde (전체공동체)이다. 개교회주의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바르넥은 세례받은 신자공동체를 교회로 정의한다. 그는 세례의 원리를 성경적으로 잘 정리하였다. 설교 후 개종자들애개 즉시 세례를 주는 캐이스와 얼마 후 시간이 경과한 후 주는 것을 성경적으로 설명한다. 사도행전 2장에 사도들은 개종자들애개 즉시 세례를 주었고 (2: 46) 베드로도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애게 설교한 후 즉시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이 이방인들은 우리말로 하면 완전한 “생짜”가 아니라 고넬료와 같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들(God-fearer)이었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행10:35)들이었다. 이미 하나님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맥가브란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준비 된 자들이었다. 빌립보의 루디아도 자색 옷감 장사꾼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 였다(16:14, 33). 참고로 자주 색깔은 royal color이다. 루디아는 귀족 상대의 장사꾼으로 해석한다.
바르넥은 고전 1: 15, 17의 바울은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않았다는 본문을 근거로 개종 후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 후 세례 주는 것을 권장한다. 고전 4; 15, 6:10절과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 로마서 6: 17(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 살후 2:15(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근거로 일정 기간 교육 후에 세례를 주었다고 말한다. 이점에서 초기 한국교회의 학습제도는 성경적 타당성을 가진다.
... 계속합니다.
(2021.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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