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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진박사의 선교 이야기] 탈레반을 알자!! - 아프간 전쟁과 탈레반


<탈레반을 알자!! - 아프간 전쟁과 탈레반>

* 지난밤 일어난 탈레반의 아프간수도 카불함락과 아프간정부 붕괴소식을 접하면서 얼마전 탈레반에 대해 쓴 글 일부를 편집해서 올립니다. 도움되시기를 바랍니다.
…..

알 카에다는 아프간 전쟁의 산물이다.

이점에서 아프간은 알 카에다를 탄생시킨 나라이고 소련이 물러간 후 6년 동안의 폭악 정치로 유명한 탈레반은 파키스탄이 출생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21세기 테러그룹의 시작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9.11테러 이전에 이미 알 카에다가 생겼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에서 알 카에다 테러그룹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특히 반미주의자들이 이 이론을 그럴듯하게 전개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는 형제간 관계가 될 정도로 아프간 전쟁에서 함께 하였다. 탈레반은 ISIS이전의 ISIS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비극의 나라 아프간

종교는 한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 이슬람으로 가장 실패한 나라로 아프간을 든다.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는 “인간적 용어로 말하면 아프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극적인 나라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 비극은 외부의 침입이나 외부적 영향 때문이 아니라 인종적, 정치적 갈등 및 종교가 빚은 비극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비극을 만드는 주체 중의 하나로 탈레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6년간 아프간을 통치한 탈레반은 ISIS의 복사판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자르카위는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간을 칼리프 국가로 만드려고 하였으나 미군의 침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탈레반의 수장을 칼리프로 세우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카니탄 이슬람 에미리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를 건설하였다.

에미리트는 토후국가의 수장을 의미한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아랍어 에미르 (emir)는 지휘관 혹은 왕자를 의미한다. 중세시대 에미레이트는 칼리프가 통치하는 국가 (state: dawla)보다 작은 나라 혹은 소왕국 개념이었다. 그래서 빈 라덴도 이라크에서 칼리프 국가를 세우려고 할 때 먼저 에미리트 국가를 세우는 것을 권고하였다.

아프간 판 이슬람 에미레이트는 이슬람의 샤리아에 기초한 나라였다. 이 때 아프간은 빈 라덴, 자르카위, 사이프 등 알 카에다 지도자들의 도움도 받고 동시에 은신처를 제공하였다. 다만 IS나 알 카에다와 다른 것은 이들의 테러 무대는 전 세계가 아닌 파키스탄과 아프간이었다. 지금도 두 나라에서 탈레반 테러는 계속되고 있다.

샤리아에 의한 통치나 잔인성은 거의 같다. 2002년 초 KBS 다큐멘터리는 탈레반 통치시절의 잔인한 상황을 보도하였다. 그 때 한국에서도 상영된 『칸다하르』라는 영화는 탈레반 통치의 극단적 단면을 잘 묘사한다.

탈레반은 1970년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공산정권과 아주 유사하다할수 있는데 그들은 정권을 잡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그들은 백성들을 도우는 자, 해방자로 보였다. 그러나 정권을 탈취한 후는 무서운 포악자로 돌변하고 말았다.

아프간의 비극은 프랑스에 망명한 아프간 작가 아티크 라히미가 쓴 <흙과 재>에 잘 묘사되었다. 그는 탄식하기를  

“아프간 사람은 멸망했다. 그의 정신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육신은 종교에 의해서,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의해서 황폐해 졌다. 불행히도 멸망하고 말았다. 처음엔 아프간의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에 의해 배신을 당했다. 그러자 이 배신 앞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애국자들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까지도 이에 대한 반응으로 또 다른 테러 즉 종교적 테러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청년은 폭격으로 귀가 멀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착각한다.

사실 아프간에는 귀먹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8백만 개의 지뢰를 제거하였으나 아직 불안하다. 너무도 가난한데 일거리가 없어 청년들은 돈을 많이 주는 탈레반에 가입한다. 탈레반이 부활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여 탈레반 통치에서 해방시켜 주었지만 신정부 역시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계속 탈레반의 공격에 시달려 유럽연합군이 파견되기도 하였다. 미국과 유럽연합군이 많은 투자를 하였지만 아프간은 여전히 불안한 나라이다. 국민들은 계속해서 나라를 떠나고 있다.  

2) 탈레반의 기원

서방세계는 혼란한 아프간을 탈레반이 장악하였을 때만 하여도 탈레반을 무서운 집단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아프간이 소련과 싸울 때 미국은 탈레반을 음양으로 많이 지원하였다. 그러나 아프간을 장악하고 세계 최대의 바미안 불상을 파괴하자 온 세계가 탈레반의 무서움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 불상은 높이가 무려 55m나 되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적인 문화재이다. 신라의 승려로서 불교 연구를 위하여 이곳을 여행하였던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바미안 불상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애틀랜틱 만슬리 (Atlantic Monthly) 통신원 카프란은 탈레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탈레반은 다음의 무시무시한 것들을 통합한 것이다. 원시적인 부족의 신조와 맹렬한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천박한 무능과 순진성과 외부세계에서 고립됨으로 야기된 완고한 잔인성과 전쟁 중에 부모 없이 자란 고아들의 결합이다. 그들은 동시에 국제화의 표본이며 수입된 범이슬람 이데올로기와 오사마 빈 라덴의 전세계적 테러 조직이 제공하는 경제적 지원과 수억 달러의 밀수산업의 결과이다.”      

탈레반이란 말은 아랍어 ‘타라브’로  ‘배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학생이란 말이고 문법적으로는 복수형이다. 알 카에다와 다른 주요한 특징은 철저히 아프간의 주류 인종인 파슈툰 족들로만 구성되었고 수니파이다. 이것은 세계적 움마를 말하는 이슬람과는 배치된다.

이들은 아프간 전쟁 중에 고아들이었으나 파키스탄에 피난민으로 있을 때 파키스탄 정부는 이들을 이슬람 학교인 마드라사 (Madrasas)에 대량 유치해서 엄격한 이슬람 교육을 시켰다. 이 학교는 등록금이 없어서 돈 없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교육장으로 순수한 이슬람을 가르치는 곳으로 알제리, 탄자니아, 필리핀 등지에서도 학생들이 유학 올 정도이다.

이들 이슬람 학교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양성한다고 당시 무샤라프 대통령조차도 비난하지만 증거가 없을 정도로 상당수 학교들은 은밀히 한다. 이 학교를 졸업한 많은 외국 학생들과 파키스탄 학생들은 알 카에다 조직원이 된다.  

마드라사가 가르치는 내용은 꾸란, 무함마드 어록, 이슬람법, 아라비아어와 아라비아 문학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슬람만을 가르치지 말고 수학, 일반과학, 영어, 컴퓨터, 인터넷 등을 가르치라고 권장한다. 그런데 일부 학교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적으로 가르치면서 두 종교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이 학교들은 자기 학생들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얻기보다 이슬람을 위하여 봉사하고 심판 날에 보상받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 학교가 그야말로 철저한 무슬림을 만드는 경건한 이슬람 학교인 것은 한 학생의 간증에서 잘 나타난다. 국립학교에서 공부한 25세의 무함마드 조베이트라는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국립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이슬람에 대한 헌신이나 경건이 전혀 없었지만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선지자 모하메드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온 세계를 여행하면서 이슬람을 전파하겠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완전 장악하여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정부군을 계속 괴롭혀왔고 일부 지역은 그들이 이미 점령했고 이제 수도 카불까지 함락시킨 것이다.

3) 탈레반의 공포정치  

탈레반은 초기에는 마치 해방군인 양 국민들의 찬사와 지지를 받았으나 무서운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사우디와 파키스탄만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였다. 탈레반은 당시 불안한 치안을 유지하고 파벌들의 내전을 진압하는데 부분적으로 성공했고 남부에서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탈레반은 가혹한 종교적 율법주의를 실행하였다.

그들은 수도 카불을 자유로운 퇴폐적 도시로 간주하였다.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세속주의로 타락시켰다고 비난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비전을 가르치면서 샤리아를 엄격하게 집행하였다. 이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유례없는 엄격한 이슬람적 청교도 윤리를 실시하려고 한 것이다.

탈레반은 나치스나 소련의 KGB같은 비밀경찰인 종교경찰 조직을 가동하여 철저히 정보정치를 하였다. 사우디의 무타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처벌이 더 가혹하였다.

탈레반의 정부 조직 역시 ISIS와 유사하다. 국회가 없고 대통령이나 정치 수반은 없고 대신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Mullah Muhammad Omar: 물라는 실제로 이슬람 선생을 의미함)가 최고 통치자이다. 그는 알라의 뜻을 집행하는 자이다. 그래서 그가 동의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이란의 호메이니와 유사한 제도이다.

탈레반은 동성연애자들을 생매장하였고 세계 최대의 불상도 우상이라고 파괴하였다. 얼마 전 일본 불교 지도자들이 그 불상을 복원하였다.  음악을 금지하면서도 탈레반 선교전용 CD에는 음악을 허락한다.

이들이 자행하는 종교적 공포정치의 실태는 너무나 끔찍하다. 타종교에 대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이며 선교사를 추방하고 감금한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기독교 선교를 하는 자국민은 사형에 처하거니와 일부 크리스천들을 불도저로 밀어서 죽이고 혼전 섹스를 하다가 잡힌 여자는 공개처형하고 포로는 눈을 도려내고 손목을 자르는 등 잔학한 방법으로 참살한다.

이들은 음악, TV, 영화를 금지하며 턱수염 면도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이슬람에서 촬영은 신중해야 한다), 연 날리기와 오후 스포츠 금지, 절도는 손목 절단, 음주는 채찍 형이다. 여자가 외출 할 때는 반드시 부르카를 입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4) 탈레반의 여성 정책

탈레반 통치시절 가장 불행한 자들은 여성들이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네 가지 중요한 정책을 선포하였다. 첫째는 여자들의 직장근무를 다 중지시켰고, 둘째는 여자들의 교육을 일시 중단하였고, 셋째는 여자들은 반드시 부르카를 착용해야 하고 외출 시는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넷째는 여자들은 외출 시 남편이나 친척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다섯째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 하고 터번을 해야 한다. 다만 여자가 일할 수 있는 영역은 여자들이 꼭 있어야 하는 인도적인 외국 자선단체이다.

탈레반 정부에는 미덕 권장 및 부덕 방지 위원회 (Department for Promotion of Virtue and the Prevention of Vice)가 있다. 그들이 여자들의 취업을 금지함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과부들이나 처녀들은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래서 파키스탄으로 피난간 난민들은 만약 자기 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직장이 허용되지 않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한 마디로 탈레반은 여자를 거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을 탄압하였다. 탈레반은 집권하자마자 먼저 여자들을 직장에서 추방하여 가정에 감금시키며 모든 여학교들은 폐쇄하였고 대학에서도 여학생들은 모두 공부를 중지시켰다. 만약 여자들이 거리에서 법에 따른 복장을 하지 않으면 종교경찰이 사정없이 매를들어 때린다고 한다.

헤라트에서 여자들이 혼자서 쇼핑을 하다가 종교경찰에 엄청나게 맞는 일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영화 『칸다하르』에 보면 여자들은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부르카를 착용하고도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입술에는 루즈를 발랐다.

탈레반의 엄격한 여성차별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는 돌로써 공개 처형하는 제도이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에는 이들이 이러한 공개 처형을 안 할 줄로 생각하였으나 새 정부도 이 법을 그대로 존속시켰다.

카르자이의 새 정부가 들어서자 서방의 한 외신 기자가 “이 법을 그대로 유지합니까“라고 질문하자 젊은 법무부 장관은 ”그것은 샤리아 이기 때문에 없애지 못한다. 대신 과거에는 큰 돌을 던지게 하였으나 앞으로는 적은 돌을 던지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참으로 현대 사회에서 상상을 초월한 어이없는 형벌인 것이다.

금번 탈레반의 카불 함락과 20년만의 정권 재이양에 앞서 여성과 어린이 70% 이상이 이미 탈레반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아프간의 젊은 여성들은 신체를 모두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뛰어갔고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여대생은 모든 여학교를 폐쇄했던 탈레반의 귀환에 "내가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2021.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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