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칠목사, 미국 횡단 여행기 B-2'] 동성연애 및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 작성자 : HesedMoon
- 15-10-24 23:16
동성연애 및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 여러분은
성도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인도하려고 합니까?
수요일 저녁에는 목사 안수식이 거행되었는데 노회는 나에게 “축사 겸 권면” 순서를 맡겼는데 마침 이때가 동성결혼에 대한 연방 정부 대법원이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었기에 답답한 심령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여행 중에 미 정부는 기어이 합법 하다고 결정하고 말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교회가 동성연애를 허락한다고 결정을 하는가 하며, 잘 믿는다고 하는 교회가 이들을 이해한다고 하고는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고 하니 불신자들이야 얼시고 좋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이에 노회 전후를 해서 목사님들이 고뇌 어린 칼럼을 쓰는가 하며 양보의 길을 터 놓는 목사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인도하고 계십니까? 아래 세 목사님(A와 B와 C)의 글을 읽어 보시고 어떤 것이 우리 고백과 일치하는 것인 지, 아니면 서로 조화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총회는 의논하여 하나된 믿음의 고백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래 글을 보고 여러분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내외는 다음에 여행길에서 나오겠지만 믿음의 고백이 여행 숙소 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이 교단 저 교단 교회를 방문하였기에 이 문제로 우리 여행 길에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다음 글들을 읽어 보시고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나의 고백적 글이지만 나의 글에 얽매이지 마시고 먼저 스스로 고민해 보는 여러분이 돼서 우리 교회 안에서 기어이 닥쳐 올 수 있는 현실에서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성도를 인도할 지 준비하여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은퇴를 하였기에 여러분 보다 더욱 자유를 가진다고 봅니다 만은, 교회에서 사역하시고 계시는 여러분의 믿음과 현실은 더욱 신랄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누가 이런 말을 하였기에 나는 조심해야겠다고 침묵하는 차원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신의 문제로 아니 교회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역 목사님의 입장에 따라 성도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A 목사의
글
“동성결혼 대법원 판결
많은 기독교인들이
결혼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을 놓고 기도해왔지만 역시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방향으로 세상이 급속히 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5:4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함으로 현재 31개 주에서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한다는 법안을 무효화 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제는 전
50개 주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고 혼인증서를 발급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Ginsburg,
Breyer, Kagan and Sotomayor 판사는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입장에 있었고
Scalia, Roberts, Alito and Thomas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는데 입장이 모호했던 Kennedy 판사가 찬성표를 던짐으로 미국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포커스
온 더패밀리(Focus on the Family)에서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이여야 하는 7가지 이유를 밝혔는데 결혼은 남자와 여자라는 반쪽들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며, 결혼은 단지 함께 살기 위한 것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들을 함께 기르기 위한 것이며, 결혼을 아무렇게나 생각함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대가는 엄청난 것임을 보고 있으며, 결혼은 단지 애정이나 법적 혜택 이상의 것으로 자녀들 위한 것이며, 결혼한
아빠 엄마와 함께 산 자녀들은 가난하게 될 확률이 훨씬 낮아 홀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에 비해 5배나
낮으며 학교를 그만 둘 가능성은 9배나 낮으며 감옥에 갈 확률은 20배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결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함으로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 받아 동성애를
비판하거나 차별대우를 했을 때 면세혜택을 취소당하거나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되었고 우려했다. 성경적인
믿음을 지키려는 개혁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의 입지는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보조금이 성경적 입장에서 성과 결혼과 가정을 가르치는 단체나 학교는 제외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했다고 해서 진리가 바뀌어 질 수는 없다. 성경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정의 되어 있어 인간이 이 진리를 바꿀 수 있는 권한도 능력도 없다. 비록 연방대법원 9명의 판결로 31개 주에서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한다는 주민의
투표로 결의한 법안을 무효화시켰다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너무 위축되지 말고 결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B 목사의 글
“복음이 죄를 이깁니다
지난주 미국장로교회(PCUSA)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내용의 교단 헌법을 최종적으로 확정했습니다. 즉 결혼을 “두 사람간의 계약”으로
정의 내린 것입니다. 이미 작년 교단 총회에서 71%의 지지를
받아 통과된 헌법 수정안이 노회에서 과반수가 넘어 통과되었기 때문에 최종 확정된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학교에서 새롭게
정의된 결혼의 개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의 자녀들이 여러분 자녀의 친구로 집에 놀러올
것이며, 여러분은 동성애자 부모들과 함께 학부모 회의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또 직장의 상사이고 동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동서애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제까지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이웃으로, 또한 자녀들의 친구들로
받아드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면 동성애자들도 그런 맥락에서 받아드려야 합니다. 물론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그들의 사상과 행동에 동의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동서애자라는 사실만으로 이교신자나 무신론자보다도
그들을 더 혐오한다면 그것은 분명 복음적인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영적인 현실입니다.
구약의 성결법의 핵심은 접촉으로
부정해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복음은 접촉으로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런 죄 가운데 있는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게 하셔서 말입니다.
이런 세상의 흐름 속에서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정서적으로 행복한 일인 것인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부부가
정조를 지키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가정의 아름다움을, 그 자녀들이 누리는 축복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동성애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우리 가정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이런 축복을 보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차이를 이들이 보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빛은 어두움 가운데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복음의 본질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그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현실을 보며 낙심할 것이 아니라 더욱 복음으로 온전하게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힘써야 할 영적 전쟁의 본질을 명심하고 말씀대로 사는 가정을 세우기에 힘쓰는, 그로 인해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C 목사의 소견
동성애에 대한 소견
“구약은 일관성 있게 동성애적
관계를 가증한 것으로 정죄하고 그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었다.”라고 말하는 주장은 매우 정확하며 정당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신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일관성 있게 동성애를 옳지 않은 것으로 천명한다.
우리는 오히려 동성애의 죄도
다른 모든 성적인 죄와 같이 심각한 죄이고, 하나님에게 정죄 받을 죄라고 말해야 한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죄는 그 어떤 형태를 띤 것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다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를
비롯해서 모든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바른 사랑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고귀한 것들은 타락하면 가장 추악한 것이 된다. 최선이 것이 타락하면 최악의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이성을 생각해 보라. 고귀한
기능을 담당하게끔 창조된 이성이 오용될 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고귀하게 창조해 주신 것일수록 타락하면 더 흉악하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능력의 하나인 사랑하는 일도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께서
내신 원리에 따라 행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구약과 신약은 모두 동성애를 모르던 시대에 문화적으로 뒤쳐진 상태여서 동성애를 금한 것이 아니라 주변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성행하며, 이스라엘조차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와 같은 죄악 속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때가
많은 바로 그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도로 동성애와 다른 모든 죄를 버리고 멀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가 만연하는 우리 시대에도 동일한 성경적 원리가 천명되어야 할 것이다. 동성애가 만연되던 시대에
쓰인 구약과 신약은 동성애를 아주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오늘날 성경을 읽는 우리들이 동성애를 인정한다면
그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적어도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는 다른 교단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요 정부와 사회에 대해서도 개혁신앙의 절개를 굽혀서는 안 될 것이다. 저급한
태도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거나 학대 내지 멸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들도 하나님의 복음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기에 우리는 인내하면서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죄인에게는
한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동성애, 동성결혼 등의 행위나 생활양식을 묵인하거나 수수방관하는 것은 분명히 죄를 짓는 것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더 나아가서 그들과 동일한 죄를 범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교회에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설교나 교육등을 통해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안 될 경우, 교회는 전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없으니 능력없고 쓸모없는 교회로 퇴락하게 될 것이다(9월 1일, 2015 년)
D. 목사 임직 식에서 내가 전한 축사.권면 말씀과 별도로 쓴 글(8월 6일 2015)
D-1 축사 겸 권면의 순서 (원고는 3월 17일 마치고는 4월 1일 2015년 중부노회 목사 안수식에 전함)
“먼저 성경 말씀 한 절을 읽겠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그(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 (계1: 6). 죽음에서 부활하사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시고는 직분을 맡긴 자에게 사도 요한은 축사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치닫고 있는 오늘날, 오늘 저녁에 임직을 받는 분에게 축사하지 않고 임직을 하여 세상에 파송하시는
자 곧 성자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다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축사가 인본주의적이 아니고 신본주의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계시록에는 종말시 배역하고 반항하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자 곧 그리스도에게 모든 덕들을 거명하면서 영광 돌리는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5: 12). 성부 하나님에게는 천사들이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7: 12). 그리스도가 악하고 더러운 세상을 심판하시고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11: 15). “할레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19:
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셨더라”(19:
16)이런 나라 건설을
위하여 오늘 저녁 목사 임직을 하여
반항하고 부도덕한 세상에 복음의 메신저를 파송하시는 자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려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영광과 친송을 드릴 때에도 우리 스스로의 소원으로 드려서는 안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유다서 25 절에는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전 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고합니다. 예수님 대신 하나님을 두고 “구주”라고 하는것도 특별하지만(딤후 2:
3 역시) 하나님에게 송축을 할 때에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라고 하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죄인인고로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임직하는 자에게 영광을 돌리데 그 이름 공로 의지하여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우리가 감사를 하든 기도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 이름 의지하여 해야만 합니다. 왜냐면 그의
“영광 위엄 권력과 권세”가 온 우주 구석 구석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의 묻직한 카보드(영광)와 위엄 곧 위대함에 감히 말 한 마디 할 수 있습니까? 그의 권력과
권세에 짓눌러 우리는 압도 당하여 그가 허락할 때만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죄인은 죽은 자같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이 만이 전능하시고 주권자이시기에 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이 만이 축복할 수 있고 심판할 수 있고 오직 그이 만이 그의 경륜에 따라 자기 도모를 역사에 행사할 수
있는 분 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 11: 36)
이런 전능하신 분이 오늘 임직 받아 세상으로 보내지는 자에게
유다서 24 절에서 두 가지 축복
그래서 오늘 임직 받는 분에게 권면합니다.
첫째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를 칭송하는 말씀이 나올 때에는 언제나
부도덕한 더러운 세상이 그려지고 여기서 그리스도 의의 통치로 연결되는 영광이 크라이막스로 나옵니다. 유다서나 계시록을 읽어보면 다 그러하고 우리 구주 탄생 시의 세상이 어떠하기에
목동들에게 주의 영광이 비추어졌습니까? 주
기도문의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는 칭송 이전에 우리의 현실 생활의 곤고와 필요를 아뢴 것입니다. 지난주 부활 주일에 헨델의 메시야 곡을 큰 교회에서는 찬양했습니다. 천지 창조, 메시야 탄생과고난과
부활, 마지막 계시록에 나오는 종말로 된 삼부로 된 노래에 할레루야 찬송에는 여러 성경을 한테 묶어
아리아, 코러스, 리사이틀,
아리아 로 짜여진 크라이막스가 우리의 심금을 고양시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고난과 영광이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우리의 구속사는 고난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생각할 수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돌담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가운데 하나를 중심해서 6 개가 둘러 쌓여 벽이 쌓여지고 있습니다(이 사실을 나의 아버지로부터 초등학교 때에 알게 됐다). 어느 하나가
돌출하지 않습니다. 구속사는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돌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쌓여 돌담이 되듯이 설교 준비할 때에도 전체 문맥을 떼어놓고 성경해석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로 인한 고난을 그리스도도의 영광과 비추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지금 우리가 가는 행로는 구속사의 마지막의 무법과 부도덕의
더러운 길에 서 있습니다. 깊은 수렁의 부도덕한 골짜기며 반항하는 높은 산들로 둘러 쌓인 좁은 협곡이며
기나긴 터넬을 통과해야만 하는 길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이 깊은 터넬을 지나가려면 만고나 이제나 세세토록 빛나는 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걷는 방법 외에
다른 별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켜 주십니다. 위에서 우리 주님이 가진 여러 덕들을 말하는 계시록에는 “그리고”(καὶ )를 연결시켜 말하였지만
유다서에는 이 접속사 “그리고” 가 없이 “δόξα
μεγαλωσύνη κράτος καὶ ἐξουσία“( glory,
majesty, dominion , and authority, ESV; 한역과 NIV는“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
라고 한다) 라고 한다. 영광-위엄-통치 가 뭉쳐 있고 그분이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분이다. 세상의 어느 통치자, 거역자가 이런 권세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온 우주에 묵직하게 드리워진 영광이 곧 장엄이요 통치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다 잡고 계십니다. 유다 서는 동성애를 하다가 망한 소돔과
고모라 같은 캄캄한 세상을 말하면서 우리 주님을 이렇게 나타내 보이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권세를 믿고 사명 다하자. 이 주의 영광이 빛나기
위해 골짜기는 돋우어지고 산들은 낮아지고 고르지 않은 길은 평탄게 되어져야만 합니다(사 40: 4). 이 사명에 수종들기 위해 여러분은 오늘 저녁에 공적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아멘”
D-2 변천하는 세기에 서서 찬양으로 논박하는 성악가(8.6.2015)
2015년도는 세계 강국인 미국에서 희한한 일이 법적으로 공인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성연애자 결혼이 연방법원 차원에서 공적으로 공인된 해였다. 과거
청교도들이 기독교 신앙 자유를 위해 건국된 이 나라가 오바마 대통령 후보 당시 외쳤던 그가 “ Change,
Change, Change!!” 하고 외쳤던 구호로 대통령이 되자 말자 나온 말은 “미국은
이상 더 기독교 나라가 아니다”고 외치더니, 언제인가 나는 TV 에서 그가 군대 내에 동성연애자를 허가하는 법을 서명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그는 미국을 반 기독교 원리의 나라로 변화시킨 획기적인 해로 만들었다. 그는 이
법이 합법화 되자 말자 이 결정을 환영한다고 하고는 너무 늦게 결정됐다고 까지 투덜대더니, 심지어 기독교는
미국의 “원수”(enemy)이다 라고 까지 했다고(“농담” 말에서 의중이 실린 말) 하니
미국이며 기독교의 장래가 캄캄해지는 것이다. 9월 18일에는
게이하는 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자를 미국 군대의 합창 의장으로 세웠다(후에 첨가). 불신자들이 이런 이야기와 행동을 해도- 너무나 하나님 창조원리를
거역하는 일이기에 - 마음이 답답 그 자체인데 미국 교회가(PCUSA)
앞장서서 이 패괴한 동성애 결혼을 찬성한다고 나오는 세상이 됐으니, 역사의 파고가 너무
높아 입술에 까지 물이 차여 신 불신을 막론하고 이 대세를 막지 못하고, 심지어 기독교인까지 부분적으로는
반대 소리를 발하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있겠지만, 파고의 물결은 대세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와 후손들 - 기독 신자의 영혼의 닻이 파선되어
끝 없는 나락에 빠져, 영원한 항구에 도달이나 하겠나 하고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오바마 대통령은 하나님 앞에서 볼 때에 제일 무서운 업적을 이루어 냈다고 본다!! 이 결정들이 앞으로 미국과 온 세상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는 뻔하게 보인다.
미국 시민들은 힘으로 말하면 영국 보다 강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영국을 동경하며 영국 것을 따라 하기를 좋아한다. 영국에서는 동성애 문제에서는 미국 보다 앞서 법제화되었고 “동성애
문제가 종교 문제 위에 있다” 고 한다.(안드레아 윌리암스
변호사 강연에서). 18,19 세기며 20 세기에 이르기
까지 세계로 향하여 기독교 가치를 선교하기에 앞장섰던 이 나라들이 앞장서서 반 기독교 정서로 변하였다. 지금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기독교가 사회에 대하여 조금 힘이 있다고 보지만 원리적으로 이미 파선되어 있기에 기독교는
(사)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패역하고 음란한
부도덕한 세상에서 너희를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φυλάξαι ὑμᾶς
ἀπταίστους )고 합니다. 들째는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στῆσαι κατενώπιον
τῆς δόξης αὐτοῦ ἀμώμους ἐν ἀγαλλιάσει ) 해 주신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주님 대신하여 노회 직무 자들이 목사 임직을 하지만 하도 세상이 패역하고 부도덕 하기에 끝까지 승리할
수 있을 가 하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의 이런 약속이 있기에 끝까지 여러분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임직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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