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모든 ‘하늘(Heaven)’들
- 작성자 : HesedMoon
- 15-09-18 12:44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모든 ‘하늘(Heaven)’들 :
해외 도서들 중 국내에 번역·소개가 필요해 보이는 도서들을 진규선 목사님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도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나타난 하늘에 대한 언급을 모두 조사한 파울러 구더의 ‘헤븐(Heaven)’입니다.-편집자 주
“악마는 우리 밑의 지옥에서 오지 않아요. 하늘에서 오죠(Devils don’t come from the hell beneath us. They come from the sky).”
영화 <배트맨 vs 슈퍼맨>에 나오는 렉스 루터의 대사다. 이토록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도, 여전히 ‘하늘’이라는 단어는 시적이면서도 신비하게 느껴진다. 영화나 음악에서도 하늘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신앙을 가진 인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하늘’이라는 단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을 단지 죽은 뒤에 가는 장소로만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늘은 어떤 곳인가? 저자 파울라 구더(Paula Gooder)는 하늘에 대한 성경적 묵상은 단순히 내세에 대한 희망 뿐 아니라 일상에 찌든 우리를 보이지 않는 실재,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을 시작한다.
우선 하늘이라는 용어에 있어 영어 성경 등에서 오는 번역으로 인한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주지는 단수로, 그 외에는 복수로 번역하는 것이다. 사실 히브리 성경은 모두 복수만 사용하며(샤마임, 히브리어에서 ‘-임’은 복수를 나타낸다), 이는 단계적 하늘이 있다기보다 ‘하늘의 거대함’을 드러낼 뿐이다.
또 ‘궁창’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라키아’에서 온 것인데,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다. 다만 고대 세계에서 이 궁창은, 혼돈의 물에게서 세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 ‘라키아’는 에스겔에서는 하나님의 병거(chariot)를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겔 1:22, 23, 25, 26; 10:1). 즉 궁창은 세상을 혼돈의 물에게서 지켜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떠받치는 개념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늘과 ‘땅’을 묶어서 서술한다. 태초에도 하늘과 땅은 같이 창조되었고(창 1:1), 재창조의 묘사에도 ‘새 하늘과 새 땅’은 동시에 나타난다(계 21:1). 따라서 하늘은 땅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하늘은 그 자체로 신비하고 위대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장소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창조의 창조가 이루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거주는 인간에게 임한다. 그것이 하늘에 대한 믿음의 가장 경이로운 것 중 하나이다.
한편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묘사는, 실제 그분의 외적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는 메타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이러한 메타포가 바로 성막으로, 눈에 보이게 만들어진다(출 25:8-22). 그룹과 시은좌(혹은 속죄소, mercy seat) 사이에 있는 언약궤가 하나님의 보좌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 영광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그분의 임재를 드러낸다.
이 성막은 훗날 성소로 발전하는데, 솔로몬 성전은 낭실-성소-지성소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뿐인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단순히 위엄의 보좌일 뿐 아니라, 자비의 보좌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저자는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것도, 우리의 잘못된 성경 이해 중 하나라는 논증을 곁가지로 전한다).
저자는 하늘의 존재인 천사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사에 대한 관심은 교회 밖에서(신학적 관심은 아닐지라도) 급증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 모두는 우리에게 천사에 대해 생각하기를 도전한다. 성경에는 두 부류의 천사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밤낮 찬양하며 그들의 날개로 하나님의 보좌를 받치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자(mssenger)이다.
하늘의 존재에는 구체적으로 그룹, 스랍, 생물(Hayyot)이 있다. 이 외에도 저자는 수호천사, 여호와의 사자, 이름을 가진 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 그리고 정경이 아닌 외경의 우리엘과 라파엘, 나아가 타락천사와 에녹서의 메타트론까지 다루고 있다(천사의 종류와 천사가 거주하는 하늘 궁정에 대한 책의 설명 전체를 서평에 옮길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모든 천사에 대한 믿음을 단순히 공상이라며 폐기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유대-기독교 전승까지 버리는 것이다. 천사에 대한 관념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풍성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천사의 역할이 하나님의 성품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는 하늘과 관련된 역동적 움직임을 다룬다. ‘하늘이 열림’, ‘하늘로 들려 올려짐’, ‘부활과 하늘’, ‘죽음과 부활 사이에 하늘의 역할’ 등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들려 올려짐과 연결되는데,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 밝혀내기 어렵지만 당대에 이런 이야기가 기이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제 내세와 하늘 간의 성경 서술을 다루고자 한다. 실제 독자들도 그 내용을 기다렸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녀는 고대 히브리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과연 죽음과 부활 사이, 우리는 어떠한 일을 겪는가? 이는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도 신학적으로, 그리고 목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물론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7절에서 그들에 대한 소망의 말을 주었다. 이러한 중간 상태에 대한 제2성전 유대교 시대의 생각은 문헌마다 다르지만, 의인은 이미 낙원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다는 공통된 관점이 있었다. 죽은 자는 잠시 거주하는 장소가 있으며, 그들은 부활할 것이고, 그 이후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에녹1서, 제4에스드라서 참조). 신약도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예수의 부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신약의 저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을 인지했고, 실제로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를 통해 이미 일어났음을 강조하며, 죽음을 불안해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을 위로하며 글을 맺는다.
이 책의 장점은 논문에 준하는 아카데믹한 내용을 현대 문학에서 고대 사상까지 종횡무진하며 쉽게 풀어간다는 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은 이제는 매우 익숙한 공간이 됐다. 비행기를 타고 길로 활용하고, 천체 관측을 통해 이제 땅에서부터 외기권(外氣圈) 이하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하얀 수염을 가진 노인의 모습을 한 신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천체물리학의 발달로 지구와 닮은 골디락스 행성까지 발견하는 지금, 본서는 우리에게 다시금 고대인의 신앙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 우리의 삶이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고대인의 ‘하늘에 대한 신앙’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천사를 직접 만나거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경험을 하지 못할지라도, 하늘에 대한 묵상은 그들과 똑같이 할 수 있다.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욥 35:5)
저자 파울라 구더(Paula Gooder)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고, 영국성서공회 소속 신학자이자, 킹스 칼리지 런던의 객원교수, 성 밀레투스 칼리지와 트리니티 칼리지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지은 다른 책으로는 「Where on Earth is Heaven?: A Little Book of Guidance」, 「This Risen Existence: The Spirit of Easter」외 다수가 있다(가격: 9.99 파운드, 국내 미번역)
/진규선 목사
총신대 신대원(M.Div.)를 졸업하고 서평가·편집자·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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