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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한국선교사 열전] 28- Edward H. Miller (에드워드 밀러, 밀의두(密義斗) 선교사


Edward H. Miller, (밀러, 밀의두(密義斗)) 선교사- 1901년 입국


우리나라에 와서 헌신한 선교사들 중에 밀러 일가(一家)의 선교사들이 있는데 어머니 엘리자베스(Elizabeth),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Edward), 그리고 그 며느리 마티(Matty)가 그들이다. 그 어머니 엘리자베스 H. 밀러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1901년, 아들 에드워드 H. 밀러(Edward H. Miller, 밀의두(密義斗))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그 당시

어머니는 61세였고, 아들 밀의두 선교사는 28세였다. 그리고 밀의두 선교사는 이듬 해, 그들보다 먼저 조선(한국)에

선교사로 와있던 같은 교회 출신의 마티 헨리와 결혼했다.

에드워드 H. 밀러 선교사(Miller, Edward Hughes. 한국명 : 密義斗)는 1873년 7월 18일 미국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 루스빌(Ruthville)에서 출생했다. 밀의두 선교사는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898~1901년 사이에 이미

조선(한국)에서 활동 중이던 빈튼 선교사(C. C. Vinton)의 조선 교육에 관한 강연을 듣고서 조선(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밀의두 선교사가 조선(한국)에서 주력한 분야는 교육선교였다. 1901년부터 1942년까지 그는 경신학교의 교사와 교장으로

또 연희전문학교의 화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처음으로 화학이란 근대과학의 한 분야 를 조선(한국)에 소개했다.

그는 1906년에 부인과 함께 조선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그리고 세계 각 대륙의 나라에 대한 지도와 설명으로

구성된 지리교과서, ‘초학지지’((初學地誌, An Introduction to World Geography, 대한 예수교 서회)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세계 각 지역의 특징, 지리 에 대한 질문이 정리돼 있고, 지구전후도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지도 등 세계지도와

대한지도(전도)가 실려 있으며, 8면에는 천연색 편찬도가 수록돼 있다. 그리고 대한지도에는 경부선, 경의선 철도가 안내돼

있다. 밀의두 선교사는 초창기 조선(한국) YMCA의 이사를 거쳐 대한기독교서회 실행이사로서 문서선교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는 ‘산학신편’(1907), ‘천로지남’(1914), ‘예수께서 구 원하심’(1938)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일산교회와 응암교회를 설립하는 등 교회 설립에도 관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1905년 11월부터 감리교와 장로교 합동으로

간행한 영어 선교사 잡지, ‘코리아 미션필드(Korea Mission Field)’에 많 은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주로 조선(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 문제와 교육, 여행을 주제로 한 것들이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 12월 29일, 그는 미국

간첩이라는 혐의로 일제에 의해 체포돼 이듬해 5월 26일까지 용산 감옥에 투옥됐다.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한국)을 떠나지

않으려고 끝까지 노력했지만, 6월 1일, 그는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이렇게 미국으로 추방된 그는 1942년부터 미국에

살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그리고 조선(한국)이 해방되자 미군과 함께

한국에 잠깐 머물기도 했다. 밀의두 선교사는 1966년 6월 6일 미국에서 작고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지금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내 마티 밀러도 함께 묻혀있다.


정신여학교 교장 헨리 밀러 (1873-1966)선교사

M.헨리 밀러(Miller, Mattie Henry) 선교사는 1873년 미국 아이오아에서 출생했다. 1897년 훼어필드 파존스 (Fairfield

Farr Jones University)대학을 졸업하고, 1900년까지 무디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01년 5월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1902년 밀러(밀의두) 목사와 결혼했다. 정신여학교 제5대(1905-1909)와 제8대(1910-1912)

교장으로 인재 양성에 전념했다. 1905년에 찬송가 수십 곡을 번역하고, 정신학교 교가(校歌)도 작사 작곡했다. (주: 그후

정신교가는 아담스에 의해 곡이 바뀌고, 박목월에 의해 작사됨). 특히 M. 헨리 선교사는 남편의 선교사역을 도우면서

'초학지지''산수 교과서' 등을 편찬하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한국의 교육선교 분야에 공헌했다. 1943년 남편과

함께 귀국했다.

사후 양화진 묘역에 묻혀있다

 

                                                                                                                                                               『계속』

박흥배 목사

안디옥 세계선교협의회 회장

왈브릿지 열방교회 담임목사

revpark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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