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열전 - 신약성경의 정경화에 결정적 역활을 한 아타나시우스 (주후367년)
- 작성자 : Henry Park
- 22-07-21 12:25
신약성경의 정경화에 결정적 역활을 한 아타나시우스 (주후367년)
아타나시우스는 신약 27권을 최초로 정경화 한 인물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교회의 집사로 있을 때
니케아 공의회에서 3위일체 교리를 채택하게 한 결정적 제공 인물이기도 하다.
주후 376년 자기 교구의 여러 교회들에 부활절 서신을 보내면서 오늘 날의 신약성경 27권과 동일한 목록을 제시하였다.
정경 확립의 중요성을 깨달은 동서교회는 주후 363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주후 393년 히포 종교회의, 마침내 주후
397년에 어거스틴의 주도하에 367년 아타나시우스의가 제시한 신약 27권이 정경임을 최종 승인한 이내 오늘까지 이르고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정경의 충족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는, ‘신구약 성경을 막론하고 신적 권위가 있는가?’ 였다. 이는 구약의 선지서들이 인정받은 방법으로, 기록된 말씀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와 같이 하나님께로나왔다는 내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사도성이었다.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냐?’ 는 것이다. 사도들의 권위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권위이므로 이 기준이
정당하다.
셋째는, ‘내용의 주제나 그 주제의 영적인 특성이 성경으로 합당한가?’ 였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거짓 문서는 제거되었다.
(예를 들면 베드로 복음, 도마복음 등등)
넷째는, 보편성이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그 문서(들)를 받아 들이고 있느냐?’ 는 것이었다.
다섯째는, 영감성이었다. ‘그 문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딤후3:16) 라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전통성이었다. 어떤 저작이 고대로 부터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는지 여부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리스도 중심적 인가?’ 라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제시한 정경의 전제 조건인 위의 일곱 충족요건을 아타나시우스 이후 거듭된 종교회의 , 그리고
공의회들에게서 승인하고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 정경의 필요성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인 이단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교회는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비하여 적어도 이만큼은 믿어야 하는 기준, 즉 교리를 세울 필요가 있었고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게 되었다. 또한 이 때의 저작은 사도들의 저작도 있었지만 이단의 저작과 사실의 기록이 아닌 대중적 취향의
문학들도 많아 교회는 그것들을 분류할 필요가 있었다. 데살로니가 후서 2:2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거짓 서신은 매우 일찍
부터 있어왔던 것 같다.
2. 연혁
가장 처음 정경을 언급한 사람은 뜻밖에도 영지주의자 마르시온이었다. 그는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영지주의에
입각하여 악한 세상을 지은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이셨을리 없고, 악의신 데미우르고스였다고 주장하며 구약성경을
배격하였다. 또한 그는 바울의 교리를 매우 좋아했는데 이는 그의 도덕적 문란성과도 관계가 있을 듯 하다. 이런 이유로
주후 144년 그는 누가복음과 10개의 바울서신만을 정경이라고 하였다.
이레나이우스(144-190)는 요한복음 논쟁을 종식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4복음서를 4중복음이라 하며 계시록과
에스겔에 나오는 네 짐승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정경으로 보았으며 공동서신과 계시록도 자주
언급하며 그 권위를 인정하였다.
2세기 후반의 '무라토리언 캐논'은 저자가 미상인 라틴어 번역본인데 그 번역은 조잡하지만 권위를 인정받던 책들에 대한
정보를 아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문헌이다.
터툴리안의 목록을 보면 지금의 27권에서 야고보서를 제외하고 있고 히브리서를 바나바의 저작으로 생각하여 신약으로
여기지 않았다. 야고보서를 제외한 이유는 저자가 너무 유명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허마스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인정하였으나 그가 이단인 몬타누스주의자가 되고난 후에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클레멘트는 다른 신학자에 비하여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폭이 넓다.
오리겐은 성경학자답게 이미 인정된 책들과 논란이 되고 있는 책들로 분류한다. 그는 클레멘트보다 엄격해서 허마스,
바나바서와 디다케는 성경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3세기를 거쳐 4세기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정경화는 전 교회적으로 어느 정도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 아타나시우스가
369년 발표한 27권의 리스트는 제롬의 불가타역을 거쳐 387년 카르타고공회에 이르기 까지 별다른 논쟁 없이 이어져 가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신약의 목록에 대하여는 카톨릭과 기독교가 서로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3. 그 밖의 책들은?
베드로복음 - 이는 대중적 취향을 위한 소설에 가까운 문학으로 분류된다. 베드로와 시몬마구스와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펼쳐가며 읽는 이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한다. 시몬마구스가 베드로와 공중부양 내기를 하다가 실패해서 다리가
부러지는 장면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장대소를 하였을 것이다. 이런 문학적 성격이 강한 문서들은 읽는 것이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정경의 목록에 포함되지는 못하였다. 3세기의 안디옥 감독 세라피온이 처음 베드로 복음을 접하고는 곧바로
베드로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안디옥 교회에서 이를 낭독하는 것을 금했다는 기록이 있다.
도마복음 -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그 하마디 문서 중 하나로 140년 경 히랍어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행적은 없고 말씀만 114개 들어 있는데 4복음서를 적절히 혼용하며 나름대로 변형시킨 것으로 '나무를 쪼개 보아라
거기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마리아에게 우리곁을 떠나게 하라. 여자는 생명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하면 그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등 4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4. 의미
정치적 투쟁 혹은 교세 싸움의 산물이 지금의 신약이 아닌가 하는 공격을 많이 받고 있다. 심지어 로마 황제가 임의로 정경을
정했다는 억측도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살펴보자면 특히 4복음서와 바울서신은 누가 억지로 제외하려한다해서 제외될
성질의 문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확고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나머지 공동서신 중 일부도 잠시 논쟁을 거치기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교회에 의해 일반적으로 완전히 인정을 받게 된다(가이슬러/닉스).
도마복음을 번역했던 브루스 메쯔거는 이를 베토벤과 바하의 음악과 비유한다. 그는'만약 세계적 음악가들이 모여 베토벤과
바하의 음악을 훌륭하다고 선포하자고 한다고 했을 때 이미 그 음악의 위대함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회의가 과연
의미있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정경은 책에 대한 '권위있는 리스트'가 아니라 '권위 있는 책들'에 대한 목록이라고 한다. 결국
정경의 과정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들을 교회가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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