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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열전 - 제롬의 벌게이트 성경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영향력이 컸던 성경 번역판은 바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이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5세기 초에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옮긴, 벌게이트('백성의 언어' 혹은 '대중적인 판' 이란 뜻)라고 불리는

번역판이다. 이는 로마 교회가 1500년도 넘게 사용했던 공식 번역판으로서 중세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한동안 예술과

문화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546년에 열린 로마 천주교 트렌트 공의회는 오직 '벌게이트'만을 진정한 라틴어

성경 텍스트로 선언했다. 당시는 이미 라틴어가 더 이상 일상어로 사용되지 않던 시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AD 4세기에는 구약 성경과 신약에 속한 27권이 그리스어와 라틴어 등 여러 언어의 형태로 교회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었다.

라틴어 사본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번역의 문체와 질이 각양각색이었으며, 필사될 때에 텍스트가 변형되기도 했다.

그래서 382년에 이르러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는 그의 비서이자 언어학자인 제롬에게 네 복음서의 옛 라틴어 번역판들을

개정하도록 요청했다.

제롬은 2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다마수스가 384년에 죽은 뒤에는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성경 전체를 그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제롬은 70인역을 활용하긴 했지만, 그리스어가 아닌 히브리어에서 구약 39권을 번역하는 일을 모두 완수했다.

그는 서문에서 외경은 유익한 책이긴 하지만 정경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성경 번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외경이

훗날에 만든 벌게이트 번역판들에는 포함되었지만, 이것들은 제롬의 작품이 아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로마교회 감독 다마수스는 비밀리에 제롬을 자신의 비서로 임명하였다. 409년 제롬은 “여러 해

동안 나는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를 도와 동·서 공의회에서 그에게 문의된 질문들에 대한 그의 답변을 적는 것과 같은 서신

작성을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것은 다마수스가 재임하던(380년) 중이었다. 그리고

다마수스의 영향에 따라 라틴어가 서방 기독교 지역의 중심적 전례 언어가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성경의 라틴어 번역본이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용어와 구성에 통일성이 없이 난잡하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라틴어 사용 지역에서 통일성

있는 새로운 공용 라틴어 성경 번역 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다마수스는 제롬에게 헬라어 신약성경70인역구약성경

정확히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부정확한 옛 라틴어 번역 본에서 벗어나 당시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도록 강조하였다.

제롬은 382년부터 신약성경을 코이네 그리스어, 즉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먼저

신약과 마찬가지로 헬라어로 쓰인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 이 성경 번역본은 로마교회의 공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라틴어

성경으로 인준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베들레헴의 수도원에 머물면서 번역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3차

번역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유대인 랍비들과 직접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이

번역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불가타 성경이 나왔다. 406년까지 지속한 작업으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은 13세기 이후

널리 쓰이는 번역본이라는 의미에서 'versio vulgata'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를 줄여 불가타판이라 한다. 불가타판은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5세기 이후 로마 교회 지역 즉 서방 기독교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서방교회종교개혁 이후 1546년 반종교개혁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천주교회는 불가타판 번역을 공식적인

성경으로 재확인했다. 종교개혁 지지 지역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하지만, 제롬의 벌게이트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제롬의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전의 성경사본들을 간직하고자 했던 서방교회에서는 아주 천천히 받아들여졌다.

외경이 제롬이 번역한 벌게이트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만 제롬은 분명히 외경의 문제점들을 지적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제롬의 사후에 그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에 외경들이 슬쩍 포함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제롬의 벌게이트 성경은 서방

전역에서 비난받았었다. 그리고 그레고리 대제가 공식 승인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의 개정본이 로마 카톨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AD600년경)

이전의 구 라틴 성경본들이 수세기동안 유행했다. 9세기에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이 번역 사본들을 인용하였다. 10

세기에는 잉글랜드와 스페인 사람들이, 그리고 프랑스의 랭귀에독 지방에서는 구 라틴역본 시편이 12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실제로, 13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제롬의 라틴 성경은 ‘벌게이트’(일반적으로 보급되었다는 의미)라는 그

익숙한 명칭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구 라틴 역본들은 로마교회의 권위에 굴하지 않았던 서방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도나티스트(Donatists), 아일랜드, 브리튼, 그리고 대륙의 아일랜드인들, 그리고 알비겐시스 등등. 구 라틴 필사본들과

단편들의 사본이 현존하는데, 그것들은 13세기의 것들이다.

이는 그 구 라틴 역본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게 된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전히 필사되었음을 증명해준다.

나아가서, 로마천주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국어로 씌어진 자기 소유의 역본들을 종종 소지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그들이 전적으로 라틴 역본에만 의존하지는 않았음을 또한 알 수 있다.

라틴 벌게이트(Latin Vulage)”란 용어가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벌게이트”란 용어는 그 자체가

“일반적인” 혹은 “받아들여 진”이란 의미이다. 원래 그것은 제롬 역본보다 먼저 존재했던 구 라틴 역본(들)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제롬 버전과 그리고 그것의 계승자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

 이 현대적인 사용법을 두 가지 일반적인 범주들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란 용어는 제롬의 라틴어 역본 그 자체를 언급할 때 사용된다. 일반화된 것들 외에, 그

역본의 정확한 형태를 알기는 어렵다. 전형적인 제롬의 것이라고 알려진, 라틴 벌게이트 단편서(복음서들)의 가장 오래된

사본은 서기 500년 것으로 추정된다. 제롬 형식의 가장 오래되고 전부 갖춰진 신약성경은 AD54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두 번째로, “라틴 벌게이트(Vulgate)”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로마 천주 교회 내부의 라틴 성경 전승을 말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로마 천주교 라틴 벌게이트는 제롬의 버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의 고정된 형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로마의 라틴 벌게이트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지속적으로 계속 변경되어왔다

는 점이다.

 제롬 벌게이트 성경이 출판된 이후 세기의 로마 카톨릭 역사를 설명하면서, 알버트 길모어(Albert Gilmore)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초기 성경들의 언어들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했다. 르네상스 후에, 추기경 히메네스(Ximenes)가

히브리어와 헬라어 구약 사이에 라틴 벌게이트 성경을 두고 자신의 수개 국어 대역성경(Polyglot)을 출판하며, 그 서문에

그것(라틴 벌게이트)이 마치 ‘2명의 도둑들 사이에 낀 예수’와 같다고 언급하였을 때,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그의 관심

부재(不在)가 명백히 드러나게 되었다. 

사도들 이후 몇 세기 동안 라틴어는 일반인에게서 죽은 언어가 되어갔고, 오직 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천주교회는 수세기 동안 로마천주교회의 신학 수련, 로마천주교회 전례식문, 그리고 성경을 위한 언어로

오직 라틴어만 사용할 것을 고집하였다.

평민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펴고 바른 성경 교육을 행하려는 사람들을 대하는 로마천주교회의 태도는 출교와 박해와 온갖

악랄한 방법의 종교재판으로 그들의 사악한 의도를 나타냈다.17세기까지 유럽의 주요 언어들로 씌어진 어떠한 자국어

번역본도 로마는 인정하지 않았으며(그것들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일반 서민 언어로 미사

(로마 카톨릭 예식)가 집전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오순절에 성령께서는 일반 사람들의 여러 언어들로 하나님의 놀라운

메시지를 주셨다. 그러나 로마천주교회는 죽은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숨기려 노력해 왔다(이는 결코, 로마의 전례식문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별개 문제다.



라틴 벌게이트가 진짜라고 로마 천주교가 공표한 이후에도 16세기 말까지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띠지 못했다는 것과 그 본문은 현재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유동적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을 또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브루스 메츠거(Bruce Metzger)는 다음과 같이 제롬 벌게이트 성경의 역사를 설명한다.

“필연적으로 제롬 개정판의 본문 필사 과정에서 때로는 부주의한 필사로, 또 때로는 구 라틴 역본의 사본들과 정교하게 융합

시킴으로써 필사자들이 제롬의 최초의 작업을 손상시켰다. 제롬의 본문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교정본 혹은

개정판들이 중세 시대에 생산되었다. 이들 중 알퀸(Alcuin), 테오덜프(Theodulf), 레드랑(Ladranc), 스티븐 하딩(Stephen

 Harding) 등의 계속되는 노력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롬의 최초 버전을 복구시키려는 이 각각의 시도들은,

유럽의 여러 학문 센터와 연관되어있던 벌게이트 본문의 몇 가지 유형들을 혼합시킴으로써 더욱 심화된 본문 부패를 결국

초래하였다.”(메츠거).

 제롬 벌게이트가 하나의 순수한 본문이었고, 그것이 구 라틴 역본들과 다른 출처들과 혼합됨으로써 점진적으로 불순하게

되었다고 메츠거는 주장한다. 그러나 제롬의 개정본이 오류가 많은 바티칸(Vaticanus) 사본과 시나이(Sinaiticus) 사본들과

유사한 순수하지 않은 본문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역시 순수하지 않다고 우리는 믿는다.

 벌게이트가 유일하게 진실한 판본이라고 선언하였던, 트렌트 공의회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라틴 벌게이트(Vulgate)의

하나의 고정된 판본이 등장한 것은 40년이 훨씬 지난 후였다. 교황청 위원회는 트렌트 공의회 이후 40년 이상을

작업하였으나, 신실한 판본을 만드는데 실패하였다. 이 위원회의 더딘 작업 진척에 실망한, 로마교황 식스투스 5세는

(1585-1590) 친히 그 문제에 관여하였고, 1590년 5월 자신의 교정본을 출판하였다.

라틴 벌게이트의 이 교정본 서문은 로마 교황청 교서에 따라 씌어졌는데, 거기에는 식스투스 판본이 “모든 공적이고 사적인

논쟁들, 봉독, 설교, 그리고 해석에 있어서 진리이며 정통적이며 신실하고 확실하다고 인정하였고, 교황청의 허가 없이

그것을 변개시키고자 하는 자는 신성한 사도들인 베드로와 바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할 것이다" 라고 씌어

있다.

 식스투스는 3개월 후에 죽었고, 알 수 있듯이, 그의 계승자들은 식스투스 교서의 위협에 감동하지 않았다.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 식스투스 라틴 벌게이트는 “로마 교황 그 자신에 의해서 초래된 약 2천개 이상의” 오류로 가득차 있었다(제누스).

1590년 9월에 추기경 대학은 모든 판매를 중지시켰고, 그것들을 모아서 가능하면 많은 사본들을 파기시켰다.

 식스투스를 이었던 3명의 교황들은 많은 업적을 이룰 만큼 오래 살지 않았다. 우르반(Urban) 7세는 단지 2주 동안 로마

교황이었다. 그레고리 14세는 10개월동안 교황이었다. 이노센트 9세는 직무실에서 단 2개월 후에 죽었다.

 클레멘트 8세(1592-1605)가 그 뒤를 이었는데, 그가 1592년에 라틴 벌게이트의 새 개정본을 발행하였다. 식스투스

5세와 클레멘트 8세 두 사람의 이름이 타이틀 페이지에 표시되었다. 이것은 클레멘틴(Clementine) 성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식스투스의 본문에 3,000개 이상의 변경을 가하였다. 전체 단락이 삭제되거나 혹은 삽입되었고, 절들이 다르게

나누어졌다.”(제코부스). 클레멘틴 성경은 그의 교황청 교서와 함께 나왔다. 그 교서에 의하면, “이전처럼, 본문의 어떤

단어도 변경되지 않아야 하며, 어떤 다양한 해석도 가장 자리에 기록되지 않아야 하고, 모든 필사본들은 그것과 동일해야 한다고 다른 것들과 구별하여 명시하였다.”

 이는 정확하게 교황 식스투스가 약 2년간 교황 직무와 더불어 이미 3000개의 변경을 집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점은

“신실한 성경사본”이라고 주장하였던 로마 라틴 벌게이트가 수세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변경되는 유동적인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본래의 라틴 벌게이트인 구 라틴 벌게이트 성경을 몰아낸 조직된 사본)가 현대 성경들의 모체가

된다는 점에서 현대의 수많은 성경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성경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의 글들과 믿음을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걸작품으로 이 시대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각 시대와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보존해 온 성경을 파괴하고자 줄곧 새로운 성경들로 대체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무시되고 하나님을 오해케 하는 사상들이 온 기독교를 물들이고 있는 원인들 중 성경 말씀을

변질시키고 성경의 진리를 파괴하여 성경을 단지 하나의 좋은 글들 중 하나로 여기게 하여 하나님을 대항하여 배도로

이끄려는 사탄의 전략은 이미 신약 초기부터 시작되어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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